초등학교 때 내리막 길을 달려 내려오다가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진 적이 있습니다. 아직도 그 때 다친 무릎의 흉터가 남아 있습니다. 이런 돌부리 같은 걸림돌은 사람들을 넘어지게 합니다. 그리고 가던 길을 멈추게 합니다. 이러한 걸림돌을 두기도 하고 걸림돌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23장에서 걸림돌 같은 그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라고 일곱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잘 포장된 의로운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는 심판 받아 마땅한 복음의 걸림돌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곱 번이나 저주하신 이유 중 첫번 째는 구원받을 자들을 구원받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아 천국에 갈 수도 없었지만 믿어서 천국 갈 수 있는 사람들까지 훼방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자신들보다 더 율법적이고 외식적인 사람들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자신들도 지기 힘든 여러 율법들을 다른 사람들의 어깨에 메게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두번 째 이유는 바리새인들이 사람들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었기 때문입니다. 눈 먼 인도자와 같은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질문하셨습니다.
”어느 것이 더 큰가?”하는 질문입니다. ‘금’ 또는 ‘성전’ 그리고 ‘예물’ 또는 ‘제단’ 중에서 어떤 것이 더 크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답은 ‘성전, ‘제단’으로 맹세하면 효과가 없고, ‘금,’ ‘예물’을 가져와서 맹세해야 효과가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음에도 말이죠. 사실 금은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성전 때문에, 예물은 거룩한 제단 때문에 그 가치가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 속은 탐욕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런 가치관을 사람들에게 심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자기들처럼 탐욕스런 분으로 만들어 버렸지만 그조차도 몰랐던 영적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소위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참으로 불쌍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은 예수님의 저주를 받기에 마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세상에 알렸다면 나는 그리스도를 위한 디딤돌이 되어야 합니다.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예수님은 걸림돌을 너무 싫어하십니다. 만일 나의 말, 행동, 그리고 관계를 통해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이 나타나지 않고, 말씀을 왜곡한 가치관이 전달된다면 나는 예수님이 보기에 걸림돌일 수 있습니다. 사실 아무리 깨끗하게 산다 해도 흙탕물 같은 세상에서 살면서 작은 얼룩이라도 없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의 사명이 있다면 죄 가운데 있는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되는 것입니다. 나 보다 더 멋있는 예수님의 제자를 나오게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롬9:31-32) “그런데 이스라엘은 의의 율법을 추구하였지만, 그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믿음에 근거하여 의에 이르려고 한 것이 아니라, 행위에 근거하여 의에 이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